증 례
57세 여자가 10일 전 아침 기상 직후 발생한 양쪽 정수리와 앞이마부분에 쑤시는 양상의 두통으로 병원에 왔다. 두통은 하루 종일 지속되었고 구역과 구토를 동반하였으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한 통증(visual analogue scale 8)이었다. 환자는 과거력에서 6년 전 고혈압, 5년 전 하시모토갑상선염, 3년 전 당뇨와 비판막성 심방세동, 1년 전 우측 중간대뇌동맥영역의 뇌경색 및 뇌하수체 미세선종을 진단받았으며 내원 당시까지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베타차단제, 이뇨제, 경구용 혈당강하제, 고지혈증치료제, 갑상선호르몬제 및 경구 항응고제 (와파린 3 mg/day)을 복용 중이었고 그 외 특이 병력은 없었다.
내원 당시 활력징후는 혈압 140/90 mmHg, 맥박수 60회/분, 호흡수 12회/분, 체온 36.5℃이었다. 신경학적 진찰에서 의식은 명료하였고 국소신경학적 결손은 없었다. 내원 직후 시행한 혈액검사상 국제표준화비율(international normalization ratio [INR])이 1.53으로 상승되어 있었으며 그 외 소견은 모두 정상이었다. 뇌 컴퓨터단층촬영 및 뇌척수액 검사에서도 특이 소견이 없었다. 환자의 두통증상에 대해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이부프로펜 200 mg)를 두 차례 투여했으나 호전되지 않았다. 두통의 원인감별을 위해 시행한 뇌자기공명 영상에서는 T1 및 T2 강조영상에서 뇌하수체 내부로 고신호강도를 나타내는 1.5 × 1.2 × 1.4 cm 크기의 병변이 있었으며 (Fig. 1), 기울기에코영상에서 해당부위에 저음영 신호를 보여 출혈을 동반한 뇌하수체졸중이 의심되었다. 다시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나트륨은 112 mEq/L, 삼투질농도가 236 mOsm/kg로 낮아져 있었다. 와파린을 중단하고 3 % 나트륨 정맥주사 및 생리식염수를 이용하여 혈중 나트륨을 정상 범위로 교정하였고, 이후 두통, 구역 및 구토 등의 증상은 완전히 호전되었다. 와파린 중단 7일 뒤 혈전색전증의 예방을 위해 와파린을 재투약 하려 하였으나 재출혈을 우려한 환자 및 보호자의 거부로 저분자량헤파린 (fraxiparine 총량 5700 international unit (IU)/day, 하루 2회 2850 IU 피하주사)으로 대체하여 항응고요법을 다시 시작하였다.
저분자량헤파린 치료를 시작하고 5일 뒤 환자는 갑작스런 좌측 아랫배 및 샅굴부위(inguinal area)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신경학적 진찰에서 좌측 엉덩관절굽힘(hip flexion)의 근력이 감소하였고(medical research council [MRC] grade 2) 침통각은 좌측 중간 및 안쪽넙다리피부신경(intermediate/medial femoral cutaneous nerve of thigh)과 두렁신경(saphenous nerve)분포를 따라 우측과 비교 시 50% 정도로 감소되어 있었다. 혈액검사에서 혈색소가 7일 전에 비해 3 g/dL이 저하되어 10.9 g/dL로 낮아져 있었으며 그 외 혈액검사소견은 정상이었다. 응급으로 시행한 복부-골반 컴퓨터단층촬영에서 좌측 엉덩허리근에 다량의 혈종이 관찰되었다(Fig. 2). 12시간 뒤, 환자의 좌측 엉덩관절굽힘 근력이 더욱 저하되어(MRC grade 1) 좌측 깊은엉덩휘돌이동맥(deep circumflex iliac artery)에 선택적 혈관조영색전술을 시행하였으나 2일 뒤 혈색소가 7.9 g/dL로 더 감소하였고 근력 저하가 더욱 진행하여(MRC grade 0) 수술적 혈종제거술을 시행하였다. 수술 후 7일째 저하되었던 근력은 다소 호전되었다(MRC grade 2).
넙다리신경마비 발생 14일째 시행한 전기생리학적검사에서 좌측 넙다리신경의 운동신경전위가 보이지 않았으며, 좌측 가쪽 넙다리피부신경(lateral cutaneous nerve of thigh) 및 두렁신경(saphenous nerve)의 감각신경전위도 관찰되지 않았다. 근전도검사에서 좌측 가쪽넓은근(vastus lateralis)에서는 운동단위활동전위(motor unit action potential)이 보이지 않았고, 좌측 엉덩허리근(iliopsoas)에서 탈신경전위 소견 없이 운동단위활동전위의 지속시간이 늘어나 있는 소견을 보였다. 이후에 리바록사반(Rivaroxaban, Bayer HealthCare, Leverkusen, Germany) 15 mg/day 투여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1년 6개월간 추적관찰 동안 출혈부작용은 없었으며 근력도 모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고 찰
저분자량헤파린은 미분획 헤파린에 비해 혈중 단백질과의 결합이 적어 저용량의 투여로도 작용시간이 길기 때문에 출혈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2,5]. 그러나 고령, 신부전증, 아스피린 및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등의 약물을 병용하는 경우에는 저분자량헤파린에 의한 출혈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6,7]. 본 환자의 경우, 신기능이 정상이었고 저분자량헤파린 투여 7일 전부터 와파린 및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를 중단하여 다른 약제로 인한 항응고효과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저분자량 헤파린 투여 5일 만에 후복막강 혈종과 이와 동반된 넙다리신경병마비가 발생하였다. 비록 와파린 투여 병력 및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로 인해 저분자량헤파린 투여 전부터 후복막강 혈종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본 환자는 이번 증상의 발생 이전까지는 복통, 요통 및 신경학적 이상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저분자량헤파린으로 인해 혈종이 발생하였거나 저분자량헤파린이 원래 존재하였던 혈종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본 환자는 심방세동, 고혈압, 당뇨의 병력이 있어 항응고요법 중단 시 혈전색전증의 발생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저용량의 저분자량헤파린 대신 치료용량의 저분자량헤파린을 투여받았다[8]. 저분자량헤파린의 투여용량 및 회수가 많을수록 출혈위험성이 높기때문에[9], 치료용량의 fraxiparine 투여가 본 환자의 엉덩허리근 혈종의 위험성을 높였을 수 있다.
현재까지 후복막강 혈종 또는 엉덩허리근 혈종과 동반된 넙다리신경병마비의 치료는 확실하게 정립된 것은 없다. 이전 보고에서 항응고제 투여 중(INR 4.1) 발생한 후복막강출혈로 인한 넙다리신경마비환자에서 신체활력징후가 안정적이고 혈색소의 감소가 없어 보존적 치료 후 호전된 경우가 있었다[10]. 즉, 넙다리신경마비를 비롯한 신경학적 결손이 심하지 않거나 신체활력징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대량출혈이 아니라면 항응고제에 대한 역전제를 투여하고 수혈 및 적절한 수액을 공급하면서 보존적 치료를 해볼 수 있다[10]. 그러나 충분한 수혈 및 수액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저혈압소견이 있거나 24-72시간이 지나도 혈색소가 지속적으로 저하되거나 넙다리신경병마비가 심해진다면 신속한 색전술(embolization) 또는 개방성 감압술(open decompression surgery)등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11]. 또한 언제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할지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없는 실정이지만 이전연구에서 후복막강 혈종으로 인해 넙다리신경마비가 발생한 4명의 환자를 색전술 또는 개방성 감압술을 시행했을 때 신속히 수술을 한 환자에서 신경학적 예후가 좋았다[11,12]. 본 증례 환자의 경우도 넙다리신경마비 발생 후 색전술을 시행하였으나 혈색소가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마비도 진행하여 조기에 개방성 감압술을 시행한 뒤 마비가 완전 호전되었다.
결론적으로 본 증례는 상대적으로 출혈 부작용이 적은 저분자량헤파린을 투여하는 중에도 치명적인 출혈 중의 하나인 후복막강 혈종이 발생할 수 있고 항혈전제 사용 중 갑작스런 서혜부 동통, 요통이나 복통, 넙다리신경마비가 발생할 경우 컴퓨터단층촬영을 통하여 후복막강의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신속한 수술적 치료가 신경손상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